e새성전건축

국가유공자 연금을 새성전건축 헌금으로 약정

   자신의 ‘국가유공자 연금’을 새문안교회 새성전건축 헌금으로 드리기로 약정한 분이 있다.

   우리 교회 분도 아니다.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태어나 미국 U C Davis(데이비스) 의대 임상정신과 교수로 35년간 봉직한 김익창 장로.

   2010년 10월에 출간된 저서 《사선을 넘어서》(예영커뮤니케이션 刊)를 통해 한국 대중에게 알려진 분이다.

   이 책은 최근 영어로도 출간되었는데 제목은 《Beyond the BattleLine: The Korean War and My Life》로 4세대에 걸친 이야기를 통해 일제강점기, 해방직후 공산치하의 북한, 한국전쟁과 그 이후 한국, 미국 유학과 이민사회의 모습을 잘 그린 자전적 저서이다.

   바로 이 책에 1919년 삼일독립운동 중에 독립만세를 앞장서서 외친 김장로의 외조부 주하룡 목사 이야기가 나온다.

   1919년 4월 8일 평안북도 강계에서 일본 헌병 1개 중대가 무차별 사격으로 시위군중을 학살했다. 이것이 강계학살 사건이다.

   한반도의 북쪽 끝이라고 할 만한 강계에 3·1만세운동의 물결이 닿은 것은 그해 4월 평양신학교 학생 주하룡이 서울에서 독립선언서를 반입하면서다.

   2002년 4월 4일자《한국일보》는 “오늘 속으로”라는 칼럼을 통해 ‘강계학살사건’을 이렇게 소개했다.

   1919년 4월 8일은 장날이었기에 주하룡 전도사는 강계장터에서 몇몇 젊은이와 함께 선언문을 읽은 뒤 시위를 시작했고, 일본 헌병은 발포하여 현장에서 다섯 명이 죽고 30여명이 체포돼 모진 고문을 받은 슬픈 사건이다. 일제 강점에 대항해 서울에서 시작한 3·1만세운동이 아주 외진 지역까지 퍼져 나갔다는 증거이기도하다.

   보훈처는 주하룡을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국가유공자로 인정했다. 이후, 남쪽으로 내려 온 주 목사는 1935년, 언더우드선교사가 개척한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양평동교회에 부임한다.

   주하룡 목사는 우리 새문안교회 부흥회에 초청된 적도 있다. “한복을 입고 예배를 인도, 설교하셨다.”(《사선을 넘어서》, 19쪽) 당시 서대문 주변에 거주하던 일가 친척들이 새문안교회에 많이출석하였고, 현재는 손자인 주봉덕 집사(7교구)가 출석 중이다.

   독립운동가 주하룡 목사의 외손주가 바로 어려운 이웃을 보면 지나치지 못하는 선한 사마리아인 김익창 장로이며, <아름다운 성전건축이야기>의 열한 번째 주인공이다.

   60년대부터 아내(그레이스 김)와 함께 북가주 한인 사회에서의 활발한 봉사자 부부로 유명한데, 특히 장남 데이빗 김씨는 지난 2009년 오바마 행정부 연방 교통국 정부분야 부차관보로 임명돼 봉직했고, 차남 다니엘은 컴퓨터 음악 전문가다.

   전화로 교회 측에 건축헌금 약정 의사를 밝힌 김 장로는 자신의 국가유공자 연금을 일정 기간 새문안교회 새성전건축 헌금으로 봉헌하게 되어 기쁘다며,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새문안교회에 헌금하는 것이 바로 독립만세운동을 한 외할아버지 주하룡 목사님을 기념하는 일이기도 하고, 현재 새문안교회 담임목사가 조카 사위인 이수영목사이기에 더욱 기쁘게 참여한다”고 헌금약정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교회건축위원회 재정분과 조성도 장로는 김장로가 첫 번째 입금을 삼일절을 기다리던 지난 2월 말에 약정대로 해 주셨다며 감사의 말씀을 전했다.

- 인터뷰/정리 : 원영희 권사(건축위 홍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