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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공개포럼 "새 예배당 건축을 생각한다"(1차) 발제문

 조성우

 2010-12-28 오전 1:38:00  3497

 

 

 

새 예배당 건축을 생각한다      1차 포럼

발제 : 최규남

1.     예배당 건축 결정이 이뤄지기까지의 절차에 관하여

 

장로교회는 장로정치의 도입을 통해 교회에서 절차적 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적응해내었다. 장로를 평신도가 투표로 선출하고 피택 된 장로들은 당회를 결성하여 교회행정과 관련된 결정을 한다. 이럼으로써 교회는 민주적 당위성과 행정적 효율성을 동시에 갖춘 의사결정기관을 지니게 된다. 한국이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에 장로정치의 사회문화적 전위성은 사라졌지만 조선말에 형성되기 시작한 한국 초기 교회에서의 당회 결성 과정은 대의민주주의의 신선한 실험장이었다.

그렇다면 새문안 교회의 예배당 관련 의사결정 구도를 대의민주주의의 프레임 안에서 바라볼 수 있겠다. 민주주의란 주인이 되어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이 성립되고, 그럼으로써 민중의 자기지배가 구조화되는 형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러한 민주정치의 이상에 개념적으로 가장 근접한 것은, 정치적 교양을 갖춘 상태에서 모든 성원들이 직접 공동체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이다. 그러나 여러 현실적 문제로 인해, 선출된 대표들이 공동체 성원들을 대의하는 대의민주주의가 일정 규모 이상의 조직체에서 민주주의의 원리를 구현할 때 사용되는 형식이다. 하지만 직접민주주의의 참여라는 화두는 여전히 남아있다. 현실적 필요와 민주적 의의에 대한 자각은 직접민주주의적 장치로서의 참여를 제도화하는 노력을 경주케 했다. , 대의민주주의의 단점을 보완하고 주권재민의 정신을 더욱 성실히 관철시키기 위한 고민이 이뤄지는 추세가 민주적 사회구성체의 일반적 경향인 것이다.

이미 한국 헌법에는 국가적으로 중대한 정치적 결정의 경우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 있다. 그 뿐 아니라 행정부가 정책을 만들고 국회에 내보내는 과정에서 시민 및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public hearing)가 있다. 이렇듯 직접민주주의의 원리, 시민 참여의 원리를 대의민주주의하에서도 구체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세속 국가에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그 장치를 국가는 종종 사용해왔다. 한국에서는 헌법개정을 위한 6번의 국민투표가 있었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안건을 국민투표로 결정하는 사례는 해외에도 있다.

국가와 마찬가지로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는 교회도, 따라서 직접민주주의적인 요소가 교회의 의사결정 곳곳에 침투되어야 하며, 특히 중요한 교회적 차원의 결정에는 당회만이 아니라 성도 전체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그것을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하는 충직한 태도가 필히 요청된다. 이런 맥락에서 수백억원의 막대한 물질과 전교인의 신앙적 결단을 필요로 하는 새 예배당 건축 을 결정하는 시점에서 공동의회가 한번도 열리지 않은 것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2.     성전용어의 신학적 정당성과 용어 사용의 맥락에 관하여

 

건물로서의 성전이 가졌던 본래 기능은 죄로 이격된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거리를 속죄제사를 통해 좁히는 것이었다. 동물의 피가 어찌 속죄기능을 할 수 있었으리요마는(9:9b), 그 제사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영단번의 십자가 제사(9:12)에 대한 예표로서(9:9a) 의미와 기능을 보유할 수 있었다. 죄 해결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거하시며(25:8;12:5;왕상8:13;9:3) 영광스러운 임재(40:34-35;왕상8:10-11)를 나타내시기 위해서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래서 성전에는 하나님의 임재와 계시(25:22b),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제사가 있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인해 더 이상 건물로서의 성전은 필요가 없게 되었다. 성전에서 인간 제사장에 의해 드려지던 속죄제사가 그리스도의 스스로 대제사장 되심과 제물 되심의 완벽한 십자가 제사로 인해 폐지되었다. 또한 예수가 친히 성전이 되어(2:21)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임재를 표현하였으며(1:14), 승천 이후에는 성령께서 우리 각자와 성도들의 공동체에 임하심으로써 구약의 건물 성전 위에 내려앉던 하나님의 영광이 믿는 자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임하게 되었다(2:33). 그렇기 때문에 신약에서는 우리의 몸(고전6:19)과 성도의 공동체(고전3:16-17;고후6:16;2:21-22)가 성전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께서 지으신 새 성전은 결국 교회인 것이다(삼하7:11-16).

           그런데 왜 우리는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칭하며 새성전 건축을 위한 물질을 헌금하라고 독려하는 것일까. 새문안교회가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규정하는 개념의 심층에는 구약적 의미의 성전 내용이 자리하고 있다. 2009510일 설교의 한 대목을 살펴보겠다. 설교 제목은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므로 (역대상 29:1~9)”이다. 

 

본문 4-5절에 보면 다윗은 개인적으로오빌의 금 삼천 달란트와 순은 칠천 달란트를 바쳐서모든 성전 벽에 입히며 금, 은 그릇을 만들며 장인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쓰게하였다고 밝혔습니다. 그가 바친 것 중에 금 삼천 달란트의 가치가 얼마나 나가는 것인지만 알아보겠습니다. …..다윗이 개인적으로 바친 금값은 오늘날의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최소한 36천억 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이 성전건축에 개인적으로 바친 재물의 총액을 밝힌 다윗은 이어서 온 백성에게 호소했습니다: “오늘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본문 5절 하반절) 그 경과가 무엇이었습니까? 본문 6-9절을 또 봅니다: “이에 모든 가문의 지도자들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지도자들과 천부장과 백부장과 왕의 사무관이 다 즐거이 드리되 하나님의 성전 공사를 위하여 금 오천 달란트와 금 만 다릭 은 만 달란트와 놋 만 팔천 달란트와 철 십만 달란트를 드리고 보석을 가진 모든 사람은 게르손 사람 여히엘의 손에 맡겨 여호와의 성전 곳간에 드렸더라. 백성들은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기뻐하였으니 곧 그들이 성심으로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다윗 왕도 심히 기뻐하니라.” 온 백성이 자원하여 성심으로 드리고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새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도 이처럼 표출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새 성전 건축을 위한 헌금을 작정하려고 하는데 지난 주일부터 많은 교우들이 침통해하거나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침통함과 고민은 이미 끝났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헌금 작정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 설교는 다윗이 성전 건축과 관련하여 많은 물질적 준비를 한 본문을 기반으로 선포되었다.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큰 정성을 들였던 만큼 우리도 새성전 건축을 위해 믿음으로 결단하여 소유를 내놓자는 게 메시지의 핵심이다. 이렇듯 새문안교회에서 성전 용어는 구약 성전의 의미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현대적 형식으로 번안된 형태의 건축물을 가리킨다. 그럼 이런 반론이 나올 수 있다. ‘누가 성전 건축을 말하면서 속죄제사 하자는 것인가? 예배할 공간을 위한 건축이고 구약적 예배와 신약적 예배의 연속성을 본다면 건물을 성전이라 할 만하다.’ 그렇다. 구약의 제사와 신약의 예배 사이에는 관련이 있다. 그래서 몸으로 산 제물을 드리는(12:1) 우리가 성전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성도 개인의 몸과 성도의 공동체가 성전의 의미로서 신약에서 부각되는 것이다. 교회당이 성전이라고 우기고 싶다면 우리의 성전용어는 성경적이지 않다고 못박고 시작해야 한다. 괜히 애꿎은 다윗과 솔로몬의 성전 건축 본문을 끌어들여 마치 예배당=성전이라는 공식이 성경적 개념인 것처럼 혼란을 야기시키지 말고 말이다. 칼빈도 <기독교 강요> 3 20 30,<교회 건물이 아니라 신자들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임>에서 건물을 성전이라고 주장하는 신학적 오류를 날카롭게 지적했다.

예배당 건축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헌신하는 것은 공동체에 덕이 된다. 그러나 헌신의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한다. 부족한 예배 공간의 확보를 위해 교회 전체가 주님께 물질을 드리자는 주장만으로도 충분하다. 수백 수천억원의 예배당 건축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아마 불충분한 동기부여의 근거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실용을 위해 성경적 당위를 저버리는 것이 교회가 할 일은 아니지 않을까.

 

3.     신학적 주제를 건축물로 형상화하는 것에 대하여

 

새 예배당 건축 관련 지침에는 이런 내용이 나와있다.

 

“<> <> <>은 우리의 믿음의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성경의 대표적인 상징적 언어들이다. 우리는 <생명의 빛>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문>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영생하게 하는 샘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신앙고백을 우리가 건축하고자 하는 새 성전 그자체를 통해서도 표현하고자 한다.”

 

 

 

 

 

 

 

토의주제

1.     성도 전체의 의견 수렴 과정이 건축 결정시에 결여된 것에 문제는 없는가? 또한 새문안 성인 교인 중 의사결정과정에 있어서 약한 고리인 교육2부 청년들이 예배당 건축과 관련하여 주변화가 가속화되는 경향이 있는가? 그러한 경향이 있다면 그것은 문제인가?

2.     성전 용어 사용이 신학적으로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러한 용어 사용을 중단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그대로 두어야 하는가? 용어 오용이 신앙 인식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3.     신학적 주제를 건축물로 형상화하는 노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신학이 문화로 표현되는 것 자체를 탓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정도의 문제일까?

 

참고자료

 

공청회

각계 각층의 의견을 청취수렴하여 국가시책이나 사회제도의 입안에 반영하는 데 취지가 있는 것으로 법적인 구속력은 없다.우리나라 국회법 제61조에서는 "위원회는 중요한 안건 또는 전문지식을 요하는 안건을 조사하기 위하여 공청회를 열고 이해관계자 또는 학식경험이 있는 자 등으로부터 의견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위원회에서 주관하는 공청회는 국회의장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의 분과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공청회로는 민법개정안, 원자력법안, 지방자치 실시에 관한 지방자치법, 한글간소화안, 헌법개정을 위한 공청회 등이 있었다. 행정기관의 공청회제도는 '도시계획법'과 같이 지역과 주민들의 이해가 얽힌 중요한 결정 사항에 있어 의무적 또는 임의적으로 공청회를 열어 이해관계자들의 대표자 등과 기타 일반인의 의견을 듣는 경우가 있다. 교육부 주관의 교육제도 및 대학입시제도 개선을 위한 공청회, 보건사회부 주관의 의료보험 및 국민연금실시에 따른 공청회 등의 예가 있다. 그외에 공공단체민간단체 주관의 공청회도 열리고 있다. 그 예로 1990 3 31일 한국금융개발원 주관의 금융거래실명제 등에 관한 공청회가 있었다.

 

<기독교 강요> 3 20 30.<<교회 건물이 아니라 신자들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임>>- 존 칼빈

"...이것이 교회 건물을 정당하게 사용하는 길일진대 우리는 여기서 그 건물들을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로 여겨서 그곳에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더 잘 들으신다거나 - 여러 세기 전에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 혹은 교회 건물들에 무슨 은밀한 거룩함 같은 것이 있어서 거기서 하는 기도가 하나님 앞에 더 거룩하다는 식의 생각을 갖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것이다. 우리 자신들이 참된 하나님의 성전들이므로,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서 하나님을 부르려면 우리 속마음에서 우러나와서 기도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어리석은 생각일랑 유대인들이나 이교도들에게 버려두자. 우리는 장소의 구별이 없이 "영과 진리로"(4:23) 주님을 부르라는 명령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옛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기도를 드리고 희생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성전이 세워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당시는 진리가 가리어져 있었고 그림자 아래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살아 있는 실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드러나 있으므로, 물질적인 성전에 집착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유대인들에게 성전을 주신 것도 하나님의 임재를 성전 벽 속에 가두어 두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참된 성전의 모습을 바라보도록 훈련시킬 목적으로 그렇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사야와 스데반은 어떤 식으로든지 하나님께서 손으로 만든 성전에 거하신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엄히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66:1 ; 7:48-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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